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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다

간다는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연인처럼 3월이 훌쩍 떠난 자리에 그렇게 4월이 당도해 있었으니... 늘 지나버린 시간들 앞에 속수무책인 편이지만 올봄은 더 그렇다. 늦추위와 봄바람에 겨울옷과 봄옷이 공존하던 옷차림처럼 3월도 정신없이 흘러갔고 정신 차리고 보니 봄의 한가운데에 멋쩍게 서 있었다. 그런 나조차 벚꽃엔딩을 보겠다며 주말을 맞아 봄꽃을 보는 연인과 가족들 사이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언니들과 나들이 갈 때, 본인 사진은 찍지 말라고 부탁하곤 하셨다. 그때는 왜 그러시는지 이해되지 않고 서운해했었는데 그땐 몰랐었다. 가는 세월의 흔적을 무엇으로 이긴단 말인가... 광고에서 떠들어 대는 콜라겐을 아무리 먹은다고 해도 비싼 화장품이며 관리기로 지울 수 있는 것이 아..

살며 2023.04.03

선택이 아닌 필수

새벽부터 내리는 봄비는 파종을 앞둔 농부들뿐 아니라 봄꽃같은 생명들에게 그야말로단비였을 것이다. 이 비로 남부지방의 오랜 가뭄이 해갈 되지는 않겠지만 오랫 만에 찾은 벗처럼 반갑다. 6개월만에 찾은 병원에서 건강을 더 챙겨야 한다는 담당의 충고에 새로이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에는 신문물을 이용해서라도 운동의지를 불살라 보려는 노력이 통해야 할건디 :) 최근에는 스마트폰기능에 BMI나 기초대사량. 근골격량 같은 신체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다. 체중계가 고장나 인바디체크 하는 가성비 좋은 체중계를 쿠팡에서 구매했다. 친절하게도 스미트폰에 연동되어 건강한 식단과 운동량같은 항목의 꾸준한 체크가 가능하다. 건강한 삶은 스스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식사처럼 챙겨야 하는 것으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

살며 2023.03.23

나의 봄

출근길 풍경, 물오른 봄꽃들이 여기저기 난리건만 하늘은 환한 봄꽃이 무색하게 미세먼지로 잔뜩 흐린 하늘. 봄을 알리는 찬란한 것들은 매화 같은 봄꽃도 있으나 초등학교 입학을 한 병아리들의 뒷모습은 더 사랑스럽다. 자기 체구만 한 가방을 메고 엄마 손을 잡고 걷는 걸음에 설렘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오래전, 두 아이가 입학하던 날이 떠오른다.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위치하다 보니 여유가 넘쳐 늦어지기 일쑤, 잔소리를 했던 기억들. 전날 비예보가 있어 우산을 챙겨 주어도 괜찮다 우기더니 비가 쏟아져 우산 들고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일. 한때는 더디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여 어서 지나길 바랐던 적도 있었으나 엄마의 보살핌이 더 이상 필요없는 사회인이 되고 보니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그저 당황..

살며 2023.03.07

그 어디쯤...

나는 그 어디쯤 서 있을까... 열정과 냉정 그 어디쯤... 비범과 평범 그 어디쯤... 행복과 불행 그 어디쯤... 오랜만에 오른 뒷산 정상에서 바라본 무등산. 그저 무심한 듯 내려다보는 듯해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2월의 추위에 무등산 정상에 쌓인 눈조차 봄햇살에 언제고 놓을 것이고 온통 초록의 세상으로 물들일 것이다. 옆지기가 어깨수술 앞두고 있어 마음이 심란했던 차, 눈이 보이는 것이 크고 넓어 그런가. 잠시 마음이 웅장해지고 살아갈 용기를 한 스푼 얻었다.

살며 2023.02.21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부부로 만날 수 인연은 대체 얼마 큼의 기적이 깃들어야 가능할까. 인간의 생로병사의 문제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부의 인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사는 일은 별개여서 서로 다른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일.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 각기 여서 두 사람의 의견을 좁힌다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끝내 합의점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최근에도 겪은 바 있어 당혹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으니...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MBTI)를 백프로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오래도록 상처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향적인 기질인 ..

살며 2023.02.08

끄적이다

이미경작가는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 찾아다니며 시간과 공간을 버틴 구멍가게를 펜화로 담은 작가다. 내 어릴 적 기억과 닿아 있어 더 정감이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보온밥솥이 나오기 전 때를 놓친 식구들에게 뜨끈한 밥을 먹이고자 안방의 아랫목 가장 따뜻한 이불속에 스텐 으로된 밥솥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간혹 늦도록 누군가 귀가를 하지 않아 발로 찬 기억도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아직도 친정집 그릇장에 동그란 스텐밥통이 있는데 세월을 이긴 스텐밥통을 보면 가족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전기 밥솥이 나오고 더 이상 이불속에 밥통을 볼 수 없었지만 어릴 적 기억 속, 사진처럼 각인 되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게 아닐까싶다. 이번 설날, 엄마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보..

살며 2023.01.31

뱅쇼를 마시며

아이들 어릴 때, 동네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들에게도 육아나 살림으로 지친 시절에 쉼터 같은 공간이었다. 학교를 보내고 바느질이나 독서모임 같은 소소한 모임을 하며 시작된 인연이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이 흘러 도서관 운영이 어려워지자 도서관지기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타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지만 그 시절, 아빠들까지 모임을 하였던 좋은 추억이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식사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서관선생님의 아들이 수능 치르고 서울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어 같이 식사 자리를 함께 가졌다. 도서관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던 말썽쟁이 남자아이가 어느새 자라 대학생이 되어 남편이 주는 술잔을 받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 꽃..

살며 2023.01.18

시대의 경종같은 부탁 "사소한 부탁"을 읽고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2018 저자는 고려대 불문학과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저서로 등 다수가 있고 옮긴 책으로 등 2018년 향년 73세 당낭암으로 타계하시기까지 여러 작품을 저술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 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이후에 썼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뇌의 어떤 증언이기도 다.”며 저자의 말에 남겼다. 이 책이 지닌 무게감 때문인지 도서관 대여 기간, 연장에 연장을 하고서야 완독 했던 책이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오하고 분명..

배우며 2023.01.11

삶의 결심

새해인사/나태주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 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그리고 꽃과 물소리와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을 덤으로 받았지 뭡니까 이제, 또다시 삼백예순 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새해아침 지인으로부터 받은 문자 중에 나태주 시인의 라는 시로 새해 첫 글을 올려본다. 따지고 보면 삼백예순 다섯 개의 모든 해님과 달님 셀 수 없는 별들은 보너스요 바람과 구름은 새들의 지저김은 또 어떤가....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란단말인가... 시한부를 선고받고 투명 중인 나의 친애하는 지인을 생각하면..

살며 2023.01.05

늘 그대

늘 그대 어쩌면 산다는 건 말이야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는 일 온종일 치운 집안 곳곳에 어느새 먼지가 또 내려앉듯 하루치의 시간은 흘러가 뭐랄까 그냥 그럴 때 있지 정말 아무것도 내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가만히 그대 이름을 부르곤 해 늘 그걸로 조금 나아져 모두 사라진다 해도 내 것인 한 가지 늘 그댈 향해서 두근거리는 내 맘 오늘이 멀어지는 소리 계절이 계절로 흐르는 소리 천천히 내린 옅은 차 한잔 따스한 온기가 어느새 식듯 내 청춘도 그렇게 흐를까 뭐랄까 그냥 그럴 때 말이야 더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 게 서글플 때 숨 쉬듯 그대 얼굴을 떠올려봐 늘 그걸로 견딜 수 있어 모두 흘러가 버려도 내 곁에 한 사람 늘 그댄 공기처럼 여기 있어 또 가만히 그댈 생각해 늘 그걸로 조금 나아져 모두 사라진다..

살며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