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끄적이다

잎새's 2023. 1. 31. 15:30

 

이미경 작.ink pen on paper 2009

 

이미경작가는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  찾아다니며 시간과 공간을 버틴 구멍가게를

펜화로 담은 작가다.   내 어릴 적 기억과 닿아 있어 더 정감이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보온밥솥이 나오기 전 때를 놓친 식구들에게 뜨끈한 밥을 먹이고자

안방의 아랫목 가장 따뜻한 이불속에 스텐 으로된 밥솥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간혹 늦도록 누군가 귀가를 하지 않아 발로 찬 기억도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아직도 친정집 그릇장에 동그란 스텐밥통이 있는데 세월을 이긴 스텐밥통을 보면 가족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전기 밥솥이 나오고 더 이상 이불속에 밥통을 볼 수 없었지만 어릴 적 기억 속,

사진처럼 각인 되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게 아닐까싶다.

 

이번 설날, 엄마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보행하시다 무릎 쪽이 찢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행히 뼈는 이상 없다지만 팔순이 넘은 연세이다 보니 회복이 더뎌 힘들어하시는 눈치다.
사람이나 기계나 세월앞에 장사 없으니  병원에서 설날을 맞아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무거웠을까 싶다.

기억력도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으신 시어머니의 겨울도 녹녹지 않으셔서 설날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 뵈었더니 작년과 많이 달라지신 모습이다.

그도 그럴것이 50대 중반에 접어든 자식들,  손주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두 어머니 고군분투 설날을 지켜보며 문득, 문정희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나의 어머니는 좋은 나무이자 좋은 낙엽이다.

눈물 나는 시절들을 홀로 살아내기도 바쁘셨을 텐데.

자식들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전 생을 기꺼이 사셨다.

결코 삶에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조금 더 곁에 머물러 있어주시길...나의 욕심일까...

 

 

 

편지/문정희

         (고향에서 혼자 죽음을 바라보는 일흔여덟 어머니에게)

하나만 사랑하시고 모두 버리세요
그러나 그것은 생이 아니라 약속이에요
모두가 혼자 가지만 한 곳으로 갑니다
그것은 즐거운 약속입니다, 어머니
조금 먼저 오신 어머니는 조금 먼저 그곳에 가시고
조금 나중 온 우리들은 조금 나중 그곳에 갑니다
약속도 없이 태어난 우리
약속 하나 지키며 가는 것
그것은 참으로 외롭지 않은 일입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는 좋은 낙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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