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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벼워지는 시간, 12월

모든 끝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22년 한 해, 나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던 한 해로 남을 것이다 12월 끝자락에서 나와 상관없을 거 같던 코로나를 심하게 앓고 일어나 보니 소소한 일상이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당도해 버린 12월 딱 이 때면 나만의 이별의식이 있다. 바쁘게 달려오던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새로운 한 해를 맞을 수 있기에 우선 시급한 스마트폰에 저장된 갤러리의 사진파일과 앱을 정리한다. 클라우드에 목록을 나눠서 저장했다가 시간이 나면 USB로 옮겨둔다. 그런데 이 작업의 문제점이라면 내가 이 사진을 지우느냐 남기느냐는 갈등의 기로에서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컴퓨터에 저장된 각종 메일과 파일을 정리하는 일이다. 휴지통과 스팸메일..

살며 2022.12.28

이런 눈, 처음이야

이런 눈, 난생처음이라는 말밖에... 17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설, 무려 30cm가 넘게 내렸다니. 여기저기 우산을 들고 조심히 걷는 인파들 속에 나도 있었다. 차들은 거북이 수준으로 천천히 운행, 그나마 헛바퀴 도는 차도 자주 보였다. 휴일에 먹거리 장도 보고 도서관도 잠시 들르기 위해 나선길. 반찬가게 주인분조차 '이 눈 속에 왜 나왔냐'는 질문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어제 한 손님이 먼 곳에서 슬리퍼를 신고 반찬을 사러 왔는데 혼자 사니까 더 먹거리를 챙기게 되더라며 후일담까지... 상황을 이겨내기엔 웃음만 한 약이 없나 보다. 성탄절 앞두고 자주 연락이 없던 이들로부터 문자가 온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덩달이처럼 카톡에 새해 인사를 전해본다. 그나저나 저 많은 눈은 어찌 치울지. 제설작업은 ..

살며 2022.12.24

인비저블(Invisible) 인간

예능프로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라는 프로는 챙겨보게 된다. 지난주 방영된 에서 이호 교수님이 자신의 동료 조남수 박사님을 언급한 내용이다. 법의학자로서 수많은 범죄현장에서 드러나는 작은 단서를 찾아 DNA 기록하는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구축하여 미궁에 빠진 범죄들을 세상 밖으로 알린 분이다. 지금이야 과학수사기법이 발전되었지만 몇십 년 전에 관심도 주지 않았던 분야였다. 이호 교수님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에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그 당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에 순응해서 지신의 일을 했지만 그것이 2차 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잔인한 범죄를 방조한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파편화된 행동이었다. 반면 '선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회자 되었는데, 나의 사는 일이 사회 ..

살며 2022.12.20

다정한 시간들.

첫 눈이라 우기고픈 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밤새 눈이 오시느라 어제 춥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나보다. 팬데믹기간, 코로나로부터 무탈하여 오히려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구도 걸리지 않아 최초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아버님 제사와 어머니 생신모임, 연달아 김장을 마치고 나니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던건지, 인후염으로 찾았던 병원서 양성이 나와 바로 격리조치 되어 홀로 고군분투 하며 울고 있을 때.목통증과 설사가 겹쳐 한 때. 탈진이 오고 극심한 목통증이와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던 그 때.. 인도 출장을 며칠 앞두고 남편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혹시 피해가 갈까봐 더 신경이 쓰이더 그 때. 나의 언니가 구윈병처럼 나타나 자신의 집으로 낚아채 듯 데려다 사람 만들어 났으니, ..

살며 2022.12.14

삶에 대한 예의, 감사

외로이 달랑 남은 달력 한 장. 어서 지나가길 바라던 시간도 분명 있었건만 막상 12월을 마주하는 내 마음은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워졌을 시간 앞에 한 해가 다르게 만감이 교차한다. 16강을 기원하는 온 국민의 응원이 우렁차게 울리던 금요일, 우여곡절 끝에 절임배추 4박스(80키로) 김장을 마치고 피곤에 지쳐 깜박 잠들던 순간, 시끌벅적한 함성소리에 깨어보니 그 어려운 경우의 수를 뚫고 16강에 들어간 대한민국. 김장의 피곤도 잊고 가족들과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다 새벽녘에 되어서야 잠들었다. 이제 최강 브라질이라는 상대를 만나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설령 그들의 도전이 무모할지라도 젊은 그들의 열정과 패기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올 한 해 특별한 일이라면,..

살며 2022.12.06

부엌은 힘이 세다.

부엌은 힘이 세고 / 황종권 엄마의 일상이란 매일 밥상을 내오고 설거지를 하는 일. 매일 쌓이는 빨래를 빨아 너는 일. 쓸고, 닦고, 치우고 밤에 군불을 지피는 일. 그러다가 쓰러져 잠들고 잠 못 자며 우울해지는 일. 이 반복이 평생 이어진다. 군불을 지피는 일을 제외한다면 이 모든 일을 평생 반복하는 일이 엄마의 일상이자 나의 일. 나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평생 반복하던 일.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집안일만큼 티 안 나게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코로나 이후 가족모임으로 처음 맞는 어머니의 생신, 가족여행으로 고즈넉한 한옥펜션에서 함께한 시간이었다. 함평 바닷가의 노을을 품는 한옥은 가을밤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 올해 86세의 생신을 맞는 시어머니, 한 해 한 해 쇠약해지시니 언제까지라..

살며 2022.11.29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

목요일.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기로에서 서성인 날. 그 누군가의 배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고마운 날. 행복한 일상은 시너지가 되어 매사에 효율성과 동시에 만족감을 준다. 그런 날은 피곤도 잊고 몸놀림이 사뭇 가볍다. 캘리를 배우며 반갑지 않은 노안이 찾아와 안과를 다녀오고 저녁밥상을 위해 장을 보고 집 도착해서 짐 정리를 후다닥 끝낸 후 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 편백 길이 마치 손짓하는 듯하다.. 쉬고 싶은 마음과 산책 사이에서 잠깐의 갈등을 겪었으나 바로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저토록 멋진 숲길의 가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봄, 여름, 가을 내내 행복한 걷기를 선물해준 나의 카렌시아 편백 숲길. 바쁘다고 외면했건만 서운하다 게으르다 타박도 없이...

살며 2022.11.17

계절의 길목에서 다정한 눈빛을 보내다

한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11월, 이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결혼한 지 26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편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불량주부임이 분명하다. 하루를 내어 부지런히 움직여 커튼이며 겨울 옷가지를 새로 꺼내고 옷장 정리며 집안을 쓸고 닦기를 반나절, 먼지는 왜 그렇게 쌓이는지, 화장실까지 청소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사놓고 먹지 않던 메밀막국수로 노동력에 부스터를 달고... 오후에는 아버님 기일 때 둘째 시누가 주신 대봉으로 감말랭이를 만들었다.. 대봉이 한꺼번에 숙성되면 다 감당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생기니 고생하신 시누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손이 가더라도 말랭이를 만들기로 한 것. 맛난 간식으로 사랑받을 생각에 부지런히 깎고 자르고 건조하기를 두 시간. 드디어 나의 노동에도 끝이..

살며 2022.11.09

순간, 영원을 잇대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을 읽고

살아 있다는 것은/문정희(2014) “순간을 놓치는 것은 영원을 놓치며 사는 것이다.” 영화 에서 키팅 선생님이 Horacio의 글을 인용한 "Carpe Diem”는 말을 떠올리게 한 첫 문장. 그리하여 “살아 있는 것은 순간을 파도치는 것”이라는 시구가 탄생된 지점인듯하다. 시인의 젊은 날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사랑과 절망을 그대로 담은 시 에세이집.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생활인으로서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시인의 글 앞에 문득, 나를 돌아본다... part1. 오직, 사랑을 위하여 part2. 다시, 나를 위하여 part3. 비로소, 인생을 위하여 편지(고향에서 혼자 죽음을 바라보는 일흔여덟 어머니에게) 하나만 사랑하시고 모두 버리세요 그러나 그것은 생이 아니라 약속이에요 모두가 혼자 가지만 한 곳으로..

배우며 2022.11.02

아들아, 내 말 좀 들어보렴

아들아, 내 말 좀 들어보렴 / 휴스.제임스랭스턴 내 인생은 수정으로 만든 계단이 아니었다. 거기엔 압정도 널려 있고나무가시들과 부러진 널반지 조각들 .카펫이 깔리지 않은 곳도 많은 맨바닥이었다. 그렇지만 쉬지않고 열심히 올라왔다. 층게참에 다다르며, 모퉁이 돌아가며때로는 불도 없이 깜깜한어둠 속을 갔다. 그러나 얘야, 절대 돌아서지 말아라. 사는게 좀 어렵다고층계에 주저앉지 말아라여기서 넘어지지 말아라 얘야, 난 지금도 가고 있단다. 아직도 올라가고 있단다 .내 인생은 수정으로 만든 계단이 아니었는데도... 오늘은 시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정엄마의 생신이다. (1920대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에 큰 언니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축하파티를 하기로 했다. 평상시에 돈..

사랑하며 202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