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201

인비저블(Invisible) 인간

예능프로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라는 프로는 챙겨보게 된다. 지난주 방영된 에서 이호 교수님이 자신의 동료 조남수 박사님을 언급한 내용이다. 법의학자로서 수많은 범죄현장에서 드러나는 작은 단서를 찾아 DNA 기록하는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구축하여 미궁에 빠진 범죄들을 세상 밖으로 알린 분이다. 지금이야 과학수사기법이 발전되었지만 몇십 년 전에 관심도 주지 않았던 분야였다. 이호 교수님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에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그 당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에 순응해서 지신의 일을 했지만 그것이 2차 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잔인한 범죄를 방조한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파편화된 행동이었다. 반면 '선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회자 되었는데, 나의 사는 일이 사회 ..

살며 2022.12.20

다정한 시간들.

첫 눈이라 우기고픈 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밤새 눈이 오시느라 어제 춥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나보다. 팬데믹기간, 코로나로부터 무탈하여 오히려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구도 걸리지 않아 최초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아버님 제사와 어머니 생신모임, 연달아 김장을 마치고 나니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던건지, 인후염으로 찾았던 병원서 양성이 나와 바로 격리조치 되어 홀로 고군분투 하며 울고 있을 때.목통증과 설사가 겹쳐 한 때. 탈진이 오고 극심한 목통증이와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던 그 때.. 인도 출장을 며칠 앞두고 남편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혹시 피해가 갈까봐 더 신경이 쓰이더 그 때. 나의 언니가 구윈병처럼 나타나 자신의 집으로 낚아채 듯 데려다 사람 만들어 났으니, ..

살며 2022.12.14

삶에 대한 예의, 감사

외로이 달랑 남은 달력 한 장. 어서 지나가길 바라던 시간도 분명 있었건만 막상 12월을 마주하는 내 마음은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워졌을 시간 앞에 한 해가 다르게 만감이 교차한다. 16강을 기원하는 온 국민의 응원이 우렁차게 울리던 금요일, 우여곡절 끝에 절임배추 4박스(80키로) 김장을 마치고 피곤에 지쳐 깜박 잠들던 순간, 시끌벅적한 함성소리에 깨어보니 그 어려운 경우의 수를 뚫고 16강에 들어간 대한민국. 김장의 피곤도 잊고 가족들과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다 새벽녘에 되어서야 잠들었다. 이제 최강 브라질이라는 상대를 만나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설령 그들의 도전이 무모할지라도 젊은 그들의 열정과 패기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올 한 해 특별한 일이라면,..

살며 2022.12.06

부엌은 힘이 세다.

부엌은 힘이 세고 / 황종권 엄마의 일상이란 매일 밥상을 내오고 설거지를 하는 일. 매일 쌓이는 빨래를 빨아 너는 일. 쓸고, 닦고, 치우고 밤에 군불을 지피는 일. 그러다가 쓰러져 잠들고 잠 못 자며 우울해지는 일. 이 반복이 평생 이어진다. 군불을 지피는 일을 제외한다면 이 모든 일을 평생 반복하는 일이 엄마의 일상이자 나의 일. 나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평생 반복하던 일.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집안일만큼 티 안 나게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코로나 이후 가족모임으로 처음 맞는 어머니의 생신, 가족여행으로 고즈넉한 한옥펜션에서 함께한 시간이었다. 함평 바닷가의 노을을 품는 한옥은 가을밤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 올해 86세의 생신을 맞는 시어머니, 한 해 한 해 쇠약해지시니 언제까지라..

살며 2022.11.29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

목요일.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기로에서 서성인 날. 그 누군가의 배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고마운 날. 행복한 일상은 시너지가 되어 매사에 효율성과 동시에 만족감을 준다. 그런 날은 피곤도 잊고 몸놀림이 사뭇 가볍다. 캘리를 배우며 반갑지 않은 노안이 찾아와 안과를 다녀오고 저녁밥상을 위해 장을 보고 집 도착해서 짐 정리를 후다닥 끝낸 후 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 편백 길이 마치 손짓하는 듯하다.. 쉬고 싶은 마음과 산책 사이에서 잠깐의 갈등을 겪었으나 바로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저토록 멋진 숲길의 가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봄, 여름, 가을 내내 행복한 걷기를 선물해준 나의 카렌시아 편백 숲길. 바쁘다고 외면했건만 서운하다 게으르다 타박도 없이...

살며 2022.11.17

계절의 길목에서 다정한 눈빛을 보내다

한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11월, 이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결혼한 지 26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편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불량주부임이 분명하다. 하루를 내어 부지런히 움직여 커튼이며 겨울 옷가지를 새로 꺼내고 옷장 정리며 집안을 쓸고 닦기를 반나절, 먼지는 왜 그렇게 쌓이는지, 화장실까지 청소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사놓고 먹지 않던 메밀막국수로 노동력에 부스터를 달고... 오후에는 아버님 기일 때 둘째 시누가 주신 대봉으로 감말랭이를 만들었다.. 대봉이 한꺼번에 숙성되면 다 감당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생기니 고생하신 시누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손이 가더라도 말랭이를 만들기로 한 것. 맛난 간식으로 사랑받을 생각에 부지런히 깎고 자르고 건조하기를 두 시간. 드디어 나의 노동에도 끝이..

살며 2022.11.09

이토록 아름다운

도심의 아파트에서 저런 가을을 볼 수 있다는 감사를 드린 아침. 올 가을은 바쁜 스케줄로 산을 찾을 수 없어 도심의 가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무뚝뚝한 남편, 생일이라며 몰래 텀블러를 준비했다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바로 내린 드립 커피를 내민다. "알고 보니 남의 편이 아니라 내 편이었어" 라며 격하게 고마움을 표현해주었더랬다^^ 미역국도 못 끓여 주었는데 좋아하는 커피정도 선물해주고 싶더란다. 남편은 나무로 치자면 느티나무 같은 사람 같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래오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무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는... 회사일로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번번이 생겨 힘든 시절이지만 가장인 그가 잘 버텨주길 바라본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아마도 단풍 짙어지는 가을의 어느 길목이 아..

살며 2022.10.24

무너지지만 마라

'사랑은 나의시간을 내어주는것'이라 박노해님의 말을 오늘은 실천해보기로. 점심식사 후 오랫만에 딸내미와 단둘이 공원을 찾았다. 비가내린 후 선선해지고 마치 하늘은 푸른물감을 풀어 놓은듯 하다. 공원근처 카페, 캐모마일시트러스티를 시켜놓고 3분 후 마시라는 주인장의 말에 향긋한 차를 앞에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준생의 일과에 종종 이런날을 선물해줘야지 하는데 현실은 쉽지않다. 늘 당당한 어깨가 요즘들어 쳐진듯해 짠하다. 언제부턴지 부모 도움이 줄더니 요즘은 지켜보는 거 외에는 딱히 없는거 같다. 언제일지 모르기에 더 힘들겠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목표하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찿길 응원할 뿐이다. 무너지지만 마라/혼글 너에게 예쁜 바람만 불기를 좋은 곳으로만 휩쓸리기를 마음을 적시는 비가 내리기..

살며 2022.10.11

추억을 먹는것

호박을 썰고 감자 껍질을 벗기는 사람 마음에는 좋은 빛이 비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 조절을 하는 사람 눈가에는; 기분 좋은 느낌이 붙는다. 그러니 사람의 온기를 나누는 일도 제대로 할 것만 같다.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마음 하나쯤 차려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멀리 간다. 그 그윽함이 오래간다. 내가 뭐 해줄게,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도마를 꺼내 부엌 조리대 위에 쿵, 하고 올려놓은 사람. 그 이후의 시간을 관객이 되어 즐기는 나 같은 사람. 나의 옆집에도 또 그 옆집에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어울려 살았으면 싶은 것은 그것이 내가 믿어보려는 '안녕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병률 / 내 옆에 있는 사람'중에서- 어릴적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들 대부분, 홀로 논농사와 밭농사..

살며 2022.09.22

다정도 병

이조년이 살던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명절은 존재하였고 하여 여인들의 고된 노동은 21세기도 여전하다. 오랫만에 만난 가족들을 위한 노동이라 말하기에 후유증이 크다. 나의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의 견해로 보자면 코웃음을 칠 가사노동인지라 어디다 대고 하소연 할 수 없으니 괜히 가족들에게라도 엄살을 부려보지만 근본적 해결은 요원한 현실이다. 남편은 2남4녀중 둘째 아들로 결혼 전, 자신은 장남 따로 차남 따로 생각지 않는다는 둥. 생각해보지 않던 경우의 소리에도 먼 개소린가 했더랬다. 세월은 26년이 흘러 그 소리가 개 소리가 아님을 알게되었으니 때는 이미 늦으리~ 큰 며느리인 형님은 오랫동안 맞벌이를 내세워 가족행사마다 빠지기 다반사. 남편과 함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나 역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건만 ..

살며 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