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315

부엌은 힘이 세다.

부엌은 힘이 세고 / 황종권 엄마의 일상이란 매일 밥상을 내오고 설거지를 하는 일. 매일 쌓이는 빨래를 빨아 너는 일. 쓸고, 닦고, 치우고 밤에 군불을 지피는 일. 그러다가 쓰러져 잠들고 잠 못 자며 우울해지는 일. 이 반복이 평생 이어진다. 군불을 지피는 일을 제외한다면 이 모든 일을 평생 반복하는 일이 엄마의 일상이자 나의 일. 나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평생 반복하던 일.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집안일만큼 티 안 나게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코로나 이후 가족모임으로 처음 맞는 어머니의 생신, 가족여행으로 고즈넉한 한옥펜션에서 함께한 시간이었다. 함평 바닷가의 노을을 품는 한옥은 가을밤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 올해 86세의 생신을 맞는 시어머니, 한 해 한 해 쇠약해지시니 언제까지라..

살며 2022.11.29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

목요일.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기로에서 서성인 날. 그 누군가의 배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고마운 날. 행복한 일상은 시너지가 되어 매사에 효율성과 동시에 만족감을 준다. 그런 날은 피곤도 잊고 몸놀림이 사뭇 가볍다. 캘리를 배우며 반갑지 않은 노안이 찾아와 안과를 다녀오고 저녁밥상을 위해 장을 보고 집 도착해서 짐 정리를 후다닥 끝낸 후 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 편백 길이 마치 손짓하는 듯하다.. 쉬고 싶은 마음과 산책 사이에서 잠깐의 갈등을 겪었으나 바로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저토록 멋진 숲길의 가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봄, 여름, 가을 내내 행복한 걷기를 선물해준 나의 카렌시아 편백 숲길. 바쁘다고 외면했건만 서운하다 게으르다 타박도 없이...

살며 2022.11.17

계절의 길목에서 다정한 눈빛을 보내다

한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11월, 이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결혼한 지 26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편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불량주부임이 분명하다. 하루를 내어 부지런히 움직여 커튼이며 겨울 옷가지를 새로 꺼내고 옷장 정리며 집안을 쓸고 닦기를 반나절, 먼지는 왜 그렇게 쌓이는지, 화장실까지 청소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사놓고 먹지 않던 메밀막국수로 노동력에 부스터를 달고... 오후에는 아버님 기일 때 둘째 시누가 주신 대봉으로 감말랭이를 만들었다.. 대봉이 한꺼번에 숙성되면 다 감당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생기니 고생하신 시누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손이 가더라도 말랭이를 만들기로 한 것. 맛난 간식으로 사랑받을 생각에 부지런히 깎고 자르고 건조하기를 두 시간. 드디어 나의 노동에도 끝이..

살며 2022.11.09

순간, 영원을 잇대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을 읽고

살아 있다는 것은/문정희(2014) “순간을 놓치는 것은 영원을 놓치며 사는 것이다.” 영화 에서 키팅 선생님이 Horacio의 글을 인용한 "Carpe Diem”는 말을 떠올리게 한 첫 문장. 그리하여 “살아 있는 것은 순간을 파도치는 것”이라는 시구가 탄생된 지점인듯하다. 시인의 젊은 날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사랑과 절망을 그대로 담은 시 에세이집.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생활인으로서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시인의 글 앞에 문득, 나를 돌아본다... part1. 오직, 사랑을 위하여 part2. 다시, 나를 위하여 part3. 비로소, 인생을 위하여 편지(고향에서 혼자 죽음을 바라보는 일흔여덟 어머니에게) 하나만 사랑하시고 모두 버리세요 그러나 그것은 생이 아니라 약속이에요 모두가 혼자 가지만 한 곳으로..

배우며 2022.11.02

아들아, 내 말 좀 들어보렴

아들아, 내 말 좀 들어보렴 / 휴스.제임스랭스턴 내 인생은 수정으로 만든 계단이 아니었다. 거기엔 압정도 널려 있고나무가시들과 부러진 널반지 조각들 .카펫이 깔리지 않은 곳도 많은 맨바닥이었다. 그렇지만 쉬지않고 열심히 올라왔다. 층게참에 다다르며, 모퉁이 돌아가며때로는 불도 없이 깜깜한어둠 속을 갔다. 그러나 얘야, 절대 돌아서지 말아라. 사는게 좀 어렵다고층계에 주저앉지 말아라여기서 넘어지지 말아라 얘야, 난 지금도 가고 있단다. 아직도 올라가고 있단다 .내 인생은 수정으로 만든 계단이 아니었는데도... 오늘은 시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정엄마의 생신이다. (1920대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에 큰 언니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축하파티를 하기로 했다. 평상시에 돈..

사랑하며 2022.10.29

이토록 아름다운

도심의 아파트에서 저런 가을을 볼 수 있다는 감사를 드린 아침. 올 가을은 바쁜 스케줄로 산을 찾을 수 없어 도심의 가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무뚝뚝한 남편, 생일이라며 몰래 텀블러를 준비했다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바로 내린 드립 커피를 내민다. "알고 보니 남의 편이 아니라 내 편이었어" 라며 격하게 고마움을 표현해주었더랬다^^ 미역국도 못 끓여 주었는데 좋아하는 커피정도 선물해주고 싶더란다. 남편은 나무로 치자면 느티나무 같은 사람 같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래오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무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는... 회사일로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번번이 생겨 힘든 시절이지만 가장인 그가 잘 버텨주길 바라본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아마도 단풍 짙어지는 가을의 어느 길목이 아..

살며 2022.10.24

사람은 나무를 심고 나무는 사람을 키우는 법을 알려준 책"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읽고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우종영(2020. 메이븐) 22.10.17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서 배웠다”라 말하는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 나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테지만 그라고 시행착오가 없었을까. 오로지 나무에 매달리다 가장으로, 한 인간으로 후회가 밀려올 때, 척박한 산꼭대기 바위틈에서 자라면서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의 한결같음에 투정도 포기도 할 수 없었다고 프롤로그에 적었다. 나무로부터 배우는 그의 단단한 삶의 태도들이 참 좋다. 오랫동안 나무를 돌보는 일에 매진한 삶의 사유가 나무의 생태와도 닿아있다. chapter1,2,3 에서는 나무의사로 30년간 이어온 사람으로 겪은 에피소드를 담았고 chapter 4,5 에서는개별나무의 특성과 저자가 보고 느낀..

배우며 2022.10.17

가을로

어디를 봐도 가을로 가득한 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한낮의 가을볕도 사랑스럽다. 이런 가을날엔 땡땡이를 쳐줘야 예의쥐^^ 그리하야 나의 소중한 지인 세 명과 함께 장성으로 떠난 가을 나들이. 암투병중인 지인과 행복한 순간을 담기위한 여행이라 더 특별하다. 달과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는 시대를 살지만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고 죽음앞에 나약하기 그지없다. 가슴 아픈것은 그 대상이 가족, 지인의 아픔이라면 엄청난 슬픔과 충격앞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세상잃은 슬픔"에 담긴 의미를 조금은 알듯 싶다. 모든 생명은 자연사 혹은 사고나 질병으로 한 번은 죽는다. 의 저자 퀴블러 로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지만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의 단계. 두 번째 단계는 분노의 단계. 세 번째..

사랑하며 2022.10.14

무너지지만 마라

'사랑은 나의시간을 내어주는것'이라 박노해님의 말을 오늘은 실천해보기로. 점심식사 후 오랫만에 딸내미와 단둘이 공원을 찾았다. 비가내린 후 선선해지고 마치 하늘은 푸른물감을 풀어 놓은듯 하다. 공원근처 카페, 캐모마일시트러스티를 시켜놓고 3분 후 마시라는 주인장의 말에 향긋한 차를 앞에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준생의 일과에 종종 이런날을 선물해줘야지 하는데 현실은 쉽지않다. 늘 당당한 어깨가 요즘들어 쳐진듯해 짠하다. 언제부턴지 부모 도움이 줄더니 요즘은 지켜보는 거 외에는 딱히 없는거 같다. 언제일지 모르기에 더 힘들겠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목표하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찿길 응원할 뿐이다. 무너지지만 마라/혼글 너에게 예쁜 바람만 불기를 좋은 곳으로만 휩쓸리기를 마음을 적시는 비가 내리기..

살며 2022.10.11

때아닌 구름 논쟁

때아닌 구름 논쟁 주말 풍경이라기에 한산하다 싶은 도로상황. 알고보니 오늘부터 사흘간 연휴가 시작되어 그런가보다. 가을비 잠깐 내린 후로는 한결 선선해지고 하늘색도 더 짙어지고 있다. 새털구름인지 양털구름인지 모를 예쁜 구름이 코발트색 배경의 가을 하늘을 곱게 수놓고 있어 찰나의 기쁨을 누려본다. 운전하던 남편은 저런 구름이 깔리면 다음날은 비가 온다나 모라나...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라고 핀잔을 주었으나 진짜 그런가 싶어 검색해보니 진짜 그랬다. 그렇게 때아닌 구름 논쟁은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그렇잖아도 오빠라며 으스대는 어깨가 더 한껏 올라간다. 그나저나 '저런 예쁜 구름이 비를 몰고 올 줄이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어린 왕자의 말이 맞나 보다. 미국댁과 데서방 어제는 미국에 사는 ..

사랑하며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