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읽는다는 것<김영하 산문-읽다 를 읽고>

잎새's 2022. 7. 31. 17:31

 

읽다 read 讀

김영하/문학동네 2015년

 

종이책이 전부이던 시절,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망라한 최종병기로 분명 인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며 종이책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굳이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지 않아도 편하게 집에서 택배로 받아볼 수 있게 되었고 전자책이니 책읽어주는 어플이 생겨나고 읽는다는 의미의 독서가 조금은 변화되고 있다. 검색창을 클릭하면 답을 어느때고 알려주지만 인류에게 독서라는 인고의 과정이 왜 필요한지, 그 작업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건지. 스스로 묻고 답을 주는 과정에서 작가의 사유가 담긴책. 

편의점 알바를 하며 힘든 취업난을 뚫기 위해 오늘을 견디는 청춘들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힘을 내는 이유일 것이다. 어느경우, 살다보면 자기세계관이 굳어져 오만해지고 차가워진 머리를 깨부쉬는 작업이 독서이기 때문아닐까...

 

p.28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말을 즐겨 썼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성격에 잠복해 있는 중대한 약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하마르티아는 휴브리스(hubris)즉 오만이었습니다.

p.29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p.31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p.104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력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크레페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p.154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p.209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