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어느 평범한 날의 풍경

잎새's 2023. 10. 11. 13:22

 

가을볕에  속이 여물어가는 가는 배추와 무

 


🍂 내 생에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프랭크 시나트라


"참기름이랑 깨 볶아 놨는데 아무 때나 들러라~" 이른 저녁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지난번 추석 때 해남 사시는 어머니가 주신 참깨가 있으나 볶을 시간도 없고
마치 기름도 떨어졌다는 내 말을 기억하시고는 방앗간에서 깨도 볶아 주시고
엄마가 손수 수확한 참깨를 더해 기름을 짜두신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신다기에
평소 좋아라 하시는 바지락칼국수를 포장해서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했다.
 
 
늘 그렇듯 엄마의 라디오에서는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고
엄마는 원두악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손수 수확한 들깨가 보였고 김장용 배추와 무가 가을볕에 쑥쑥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배추며 무. 대파. 단감을  미리 따서 손질해 두셨다.
출근하느라 반찬이 뻔하다는 것을 아시고 지금도 김치를 담아 주시곤 한다.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은 저녁메뉴가 다르다며 알아차리는 남편.
그런 날은 싱글벙글 마냥 좋아 보인다며 사심가득한 배려의 말을 건넨다.
언제든 엄마가 보고 싶으면 자주 뵈러 가라나 모라나...


요즘들어 부쩍 허리도 굽고 보행도 불편해하시고 입맛도 없어하시니
엄마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엄마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끼니도 잘 챙기고 마음도 단단해져야 한다'는 당부
뒤에는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에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차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을은 그 어느 때보다 
고왔으니 순간 몽글몽글한게 피어올라 가슴 한 켠이 따뜻해졌고
그렇게 나의 평범한 가을날이 저물었다.
 
 

가을 하늘을 수놓은 노을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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