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지난 여름의 기억

잎새's 2023. 9.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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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신경치료를 하거나 다른 통증치료를 받고 나서 꼭 들르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은 호박죽.
더위가 기세를 떨치는 계절엔 콩국수.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지 않지만 딱히 이유도 없이 내 음식 취향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오십견이 찾아와 눈물의 어깨도수 치료를 받고 나서도 그랬고.
몇 달 전 치과 신경치료 후에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이 음식취향의 시작점은 어릴 적
엄마에게서 부터시작된거 같다.

농사일로 늘 바쁜 엄마는 장마가 와서 일할 수 없거나 추수를 끝내는 시기가 되어서야

어린 자식들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을 내실 수 있었다.
밭에서 수확한 노란 호박과 팥을 삶아 호박죽을 쑤시거나 콩을 불려 콩물을 갈아

국수를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엄마의 음식 솜씨가 워낙에 좋기도 했지만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주는

따뜻한 온기가 달콤한 호박죽에 시원한 콩물에 담겨 있기에 힘들고 위로가 필요한

그 시간 찾는 소울푸드가 된 것 같다.
이젠 늙으신 엄마는 더 이상 내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시지 못한다.
성인이 된 나는 비가 오거나 간혹 엄마가 보고 싶으면 자주 가는 죽집에 들러 포장해 간다.

한 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엄마를 보는 일,
마음이 서글프지만  매 순간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이 내 몫의 일일 것이다.
길고 무더운 여름도 끝이 보이고
지난여름의 기억은 어느 해보다 뜨겁고 힘든 시간이었다.
23년 가을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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