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행위이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다.”(p.232)
그것은 컵의 물이 비어 있어야만 주님의 보배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배가 내
마음의 컵에 담기면 물이 넘쳐 흐르는 것도 가능한 것”(p.234)이라 했다.
예측 가능한 사회 속에, 예측 가능한 일들을 추구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계획과 경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 쉽지 않는일이다.
그래서 “내려놓음”이란 단어는 쉬운 듯 해보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들며 이 비유에 두 명의 아들이 모두 아버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두 아들의 모습은 자기애와 자기의를 지닌 우리 신앙생활 모습에 공존한다고 했다.
둘째 아들 탕자는 ‘자기애’를 잘 드러낸 경우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이 기대하는쪽으로 일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다.
오늘날 자기애는 자신을 자랑하고 광고하기 좋아하는 현대인의 모습에도 있다.
돌아온 탕자인 둘째 아들에게 후한 사랑을 베푼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동생에 대한 분노를
‘자기의’라고 말한다.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도 분노하기 쉬운데 자신이 숨기고 싶은 모습이 드러날 때
하나는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모습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이 긁히는 곳이 가정이나 교회가 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저자는 내 마음이 긁히는 이유는 내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은 송장이 긁혔다고 벌떡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오해를 두려워할 필요도, 비난에 기죽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비난은 한 영혼을 메마르게하고 내적분노, 관계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변화가 안되는 아이들에게 지적이나 고소가 아닌 ‘사랑의 말’과'기도'가 해답인 것이다.
지금은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지혜’는 영어성경에서 분별하는 마음(discerning heart)이라고 번역했다.
상대방의 심정을 일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능력인데 우리는 판단하는 대상의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과거와 미래를 보신다는 것이다.
이레교회 툭수라는 청년의 경우, 힘든 고난을 통해 욥처럼 인내한 경우다.
툭수는 신학교에 다니며 한 자매를 만나 결혼했지만 자매의 어머니 집에 강도가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설상가상 툭수는 결핵에 걸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진다. 병원 입원중에 그곳에서
청년들을 전도하는 툭수의 고난은 “그 영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것.”(p.146)
요즘 고난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된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 같다.
기쁨 중에는 나즈막이 속살거리시지만 고난 중에는 메가폰으로 말씀하신다는 것!
내 마음의 가장 중요한 그 자리에 그 분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순간이 언제나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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