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나의 산행기

잎새's 2011. 10. 18. 15:34

 

 

가을 햇살이 하늘만큼이나 점점 깊어지고 있다.

곱디고운 단풍은 마치 새색시 볼처럼 불그레하다.

2주 전 남편과 둘이서 증심사길로 무등산행을 다녀왔다.

그때만 해도 바람재의 단풍들이 살짝 붉은빛을 띠었는데

지금은 더욱 장관일 게다.

 

 

 

가을햇살 때문인지, 손짓하는 억새 때문인지

김밥도 싸고 사과두 개도 잊지 않고 챙겼다.

두 시간정도 힘든 산행 끝에 중봉벤치에 앉아 먹은 김밥맛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억새밭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오면서

"장불재를 가려면 저질체력을 키워야 할 텐데.."

내가 무등산 중봉을 다녀왔으니 일주일 몸살을 앓았다.

 

 

 

엊그제 딸아이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불류 시불류'(我不流 時不流)/이외수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대충 그런 뜻...

저자의 작품보다 작가의 긴 생머리에 도인 같은 모습 때문인지

저자의 책을 이제야 접했다.

그의 철학과 문학에 대한 사유가 명쾌하고 유쾌하다.

때론 시대와 사회현상에  일침을 가하기도..

 

 

 

느티나무는 향기로운 열매나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열 살만 넘어도 지나가는 행인들이 쉴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가지를 내어준다.

그런데 마흔이 넘도록 남에게 피해만 끼치는 인간들은 워따 쓸거나 잉.(p105)

 

 

 

산책길에, 핏빛보다 더 새빨간 단풍을 발라보면서 어쩜, 이라는 감탄사를

누가 처음 사용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쩜, 그다음에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p127)

 

 

 

가을 찻잔에 달빛 한 조각을 녹여서 마셨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p187)

누가 비질해서 걸어두었나, 가을 다목리 멀어지는 하늘에 새털구름 한 자락.(p188)

(음, 가을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니...)

보기만 해도 온 세상이 환해지는, 꽃이라는 이름의 목숨 한 송이(p.211)

 

 

 

이 책을 빛내는 또 한 사람, <보리동식물보감>을 그린 정태련 씨의 세밀화.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얼마나 관찰해야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마치 그림에 혼을 실은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야생화이름이 참 정겹고 다채롭다.

내 어찌 이런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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