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정호승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시인의 시는 언제 읽어도 감성을 젖게한다.
기억 저편 해묵은 첫눈에 관한 느낌을 시 한편에 담을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들과 강아지만 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보행에 큰 불편만 없다면 어른인 나조차 들떠 맘이 설렌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점심식사후, 첫눈 내린 기념으로 동네 카페서 카푸치노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감성은 아직 남아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제부터 개수대 하수구가 막혀 고생스러웠다.
오늘은 트래펑 두병을 사다 부었다.
그조차 여의치 않자 뜨거운물 세례를 퍼부었더니 이런 할렐루야다! 막힌 속이 뚫린듯 시원~
첫 눈 내려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막힌 개수대가 뚫린 사실에 환호를 부르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중년의 아줌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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