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지닌..
7월 무더위을 잠시 잊게한 190페이지 분량의 작은책.
마그다 홀렌데르 라퐁,
그녀가 떠올리기 조차 힘든 기억을 증언하는데
30년이 걸렸고 그녀로 하여금 모국어조차 잊을만큼 힘든 시간이였다.
아유슈비츠와 -비르케나우, 나치 치하 절멸수용소로 끌려간 16세 소녀,
그곳에서 엄마와 동생을 잃고
밤이면 자신의 옷을 잘라 목을 매는 같은방 동료들의 죽음을 대하며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죽음은 확실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인 순간, 죽음과 나사이에는
경계가 사라졌고 나는 자유롭게 삶을 창조했다.
이허한 확신은 힘, 다시 말해 생명력을 내게 선사했으며
그 힘은 내 너머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p.112
그녀가 극심한 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죽어가는 한 여인이 건네준 곰팡이 슨 빵 네 조각을 쥐어주며 하던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해달라"는
말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인간성이 모욕당하고 굴종 당하고 파괴되었던 그 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내가 변변치 않은 내 수준에서
내 삶에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오늘 나는 내가 쇼아(홀로코스트)희생자가 아니라
내면적 화해를 이룬 증인이라고 느낀다.
자신이 상처와 두려움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지않고는
누구에게도 최선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꺠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를 구속한다.
인간답게 살 것인가, 아니면 모욕적으로 살것인가.
폭력에 기대어 살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위해 살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p.134
죽음의 공포와 인간성 말살은
나치 치하의 유대인이 겪은 떠올리기 힘든 경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죽음이 더 쉬운 선택이였을 그 공포의 기억과
후일 살아남은 자가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과 세상과의 화해를 이루고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의 열려한 초심자로 살겠다는
그녀에게서 삶을 대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발견했다.
작은 사랑이든 큰 사랑이든 나는 그 어떤 말로도
사랑을 설명하지 못하겠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사랑의 열렬한 초심자일 것이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아나는 것.
나는 환희를 느끼며 죽고 싶다.
지상에서의 삶은 나에게 시련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베풀기도 했다.
참으로 기쁘게도 무수한 온정과 미소와 시선과
얼굴이 나를 보살펴주었다.
감사한 마음은 이루다 말 할 수 없어서 온 하늘에
담아도 부족할 정도이다.
나는 사랑하며 떠나고 싶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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