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잎새's 2016. 6. 23. 16:45

 

 

 

 

책날개 저자소개란에는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그리고-

 

삶은 누구에게나 현재진행형이기에

막연이 추측만 할 뿐이다.

80년대 거친 항거의 시간...

 

 '과거를 팔아오늘을 살지 않겠다'

세계의 분쟁지역과 가난한 나라를 발로 밞으며

대체 그는 무엇을 보고 담았을지...

500페이지 넘는 두꺼운 시집안에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사회 혁명을 꿈꾸던 그가

생명의 공동체 '나눔농부마을'을 만들고

자연에서 나눔에서 새로운 사상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진전을 갖고 시집을 내는 여행작가는 많지만

온 몸으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담으며 살아내는 일은 쉽지 않는 일이기에

왠지 마음이 가는 그의 글과 사진.

 

 

 

발바닥 사랑

 

사랑은 발바닥이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은 자신의 발이 그리로 가면

머리도 가슴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의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우리 취후의 날

하늘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리니

어디 너의 발바닥 사랑을 좀 보자꾸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 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을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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