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이놈의 몹쓸 건망증...

잎새's 2012. 11. 22. 20:29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점심메뉴로 크림스파케티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행복한 가을날 오후를 즐겼다.

그런데 딱 그때까지...

후배와 헤어진 후 동사무소에 들러 업무를 처리하고 이른 퇴근 시간을

활용하고자 며칠 전 자신만 부드러운 잠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우리 집 남자를 위해 속옷가게를 들렀다.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의 잠옷을 입고 좋아라 할 우리집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덩달아 행복해선 잠옷을 샀다.

 

그리고 다음 들른 곳은 동네마트..

이것저것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왔다.

딸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어딘가에 책을 흘리고 온 것이 떠올랐다.

아침에 제 친구에게 빌린 책을 몇 장 복사해달라고 했던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난 것.

분명 점심 먹은 레몬테이블에서는 가지고 나온 것까지 생각났는데

버스 안에서도 챙기고... 문제는 그다음 행선지다.

오는 동안 세 곳을 들렀으니 분명 세 군데 어딘가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상 가장 빨리 들른 동사무소부터 전화로 수소문해 보니.

그곳에는 없다고 했고 그다음으로 들른 속옷가게..

다행히 집에서 가깝기로 전화보단 빨리 가보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놈의 몹쓸 건망증... 정신줄을 놓고 다니니.. 그곳에도 없다고

하면 어떡하나...' 가는 동안 나 자신이 한심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른 저녁을 하고 있는 가게 여주인은 나를 보며 "그렇지 않아도

못 보던 책이 있어 궁금했다."라며 돌려준다.

 

30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내게는 3년보다 더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아프리님말처럼 머리에 좋은 음식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할 판이다.

손가락운동은 날마다 하고 있고 책도 너무나 보는 편이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땀나게 도착해서 딸아이에게 듣던 말을 잊지 못한다.

"엄마의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하겠어요..."

틀린 말은 아닌데 왜 그리 서운하고 씁쓸한지...

중년의 주부들에게 천병처럼 따라오는 직업병이 있으니

건망증, 군데군데 쑤시고 아픈 허리병, 골다공증...

 

분명 내 탓만은 아니건만.. 저희들 낳고 기르느라

내 몸 챙길 여력 없이 살아왔건만...

자식들은 아픈 엄마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다.

누굴 탓하리오.. 저 나이 때 나도 엄마에게 하던 말이었는데...

괜스레 하루종일 마음고생하고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는 

건망증 말기환자 잎새의 하소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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