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놓은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딸아이 학교에서 부여의 신동엽문학관과 그곳에서
가까운 부소산성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발길 닿는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가을날이지만
문학기행이라는 점이 더욱 설레게 하는 것 같다.
8시 30분에 출발... 두 시간 정도를 버스로 달려
시인의 생가에는
<신동엽생가>라는 부인 안병선 씨의 시를 신영복 씨의
글씨로 새긴 목판이 걸려 있다. 바로 뒤편에
신동엽문학관으로 들어서면
관장님의 친절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문학관을 막 들어서니 파주출판단지 건축물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건축가, 승효상 씨 작품이라고...
뒤쪽에 위치한 부소산성이 배경이 되고
주위 경관을 해치지 않으려는 건축가의 노력이 엿보였다.
모던하면서도 격조 있는 건축물은
걸음 하는 이들에게 쉼을 허락하는 편안함을 주는데
문학관의 옥상에는 나지막한 언덕처럼 잔디가 깔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여시내의 정경도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준다.
마당 한편에는 부여출신 설치미술가, 임옥상 씨가
신동엽시인의 대표 시 구절들을 깃발처럼 형상화해서 인상적이다.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아버지 신연순 씨의 1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국민방위군에 징집되나
이듬에 거기에서 디스토마에 걸린다. 후일에 이것이 화근이 되어
시인은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부인 인병선 씨를 만나 57년 결혼. 조선일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신춘문예로 입선한다.
명성여고 국어교사로 취직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직.
69년에 간암으로 39년의 짧은 시인의 생애가
너무나 안타깝기만 했다.
현재 문학관은 2009년 유족들이 생가를 부여군에
기증하여 2011년에는 지금의 문학관모습으로 준공되었다. 시인의 작품으로
<아사녀><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조국><서울>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평전 시선집><금강산> 출간되었다.
그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던 지식인들 사이에
미소년 같은 외모뒤에
조국의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외세와 분단,
부패한 권력을 걷어치우고자 하는
온통 향기로운 흙가슴으로 가득 한했던 거 같다.
그런 그를 좌익으로 몰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시에서 노래하듯
남과 북이 힘 있는 자와 약한 자가 어우러져 "중립의 초례청"을
꿈꾼 이 시대의 진정한 아나키스트가 아닐지...
39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시인으로 교육가로
깊은 자국을 후세들에게 남겨 놓은 게 분명하다.
신동엽문학관에 다녀왔다고 하니
우리 집 아이들, 국어책에서 배웠다고 한다.
신동엽이라는 인기연예인을 떠올리지 않고
시인으로 기억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는 곳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는데 부여는
기행 하기 좋은 날씨여서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서둘고 싶지 않다 / 신동엽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 찔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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