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잎새's 2011. 5. 24. 18:39

 

 

 

 

언젠가 부터 내몸 유전자 어디선가 나즈막하고 오래된 돌담과 세월의 흔적이 담긴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던 차에 최순우선생님의 책을 잡게 된것.

우리 미술품과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지식이 부족한 터라

이 책은 내게 좋은 길 안내서가 되어준 책.

책의 서두에 유홍준교수가 말했듯이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말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에 펼쳐진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보며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꾸밈없이 소박한 내면에 감춰진 강인한 우리 민족성을 건축물에서 보았기 때문아닐까.

 우리의 미술과 건축물에 관한 탁월한 안목과 혜안을 짧게 나마 정리해보았다.

 

우리의 미술.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모여서 동아난 의좋은 초가 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줄 때가 있다.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 가면서 순박하게 살아 왔다.

 

한국의 미술, 이것은 이러한 한국 강산의 마음씨에서 그리고 이 강산의 몸짓 속에서 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 이야기와도 같은 것, 그리고 후리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한반도의 표정 같은 것,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이다.

 

한국의 공에는 한국의 주택 속에서 자라났다.  멀리는 석기시대로부터 가깝게는 고려의 청자, 조선시대의

자기에 이르기까지 참 잘도 우리의 풍토와 호흡이 맞아왔다.  우리의 미술 중에 무엇이 제일 한국적이냐 할 때

우선 우리는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말이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강산과 여기에 서린 조상들의 입김과 메아리치는

아련한 민요와 오랜 역사의 동록 같은 것들이 얼버무려진, 말하자면 민족교향시 같은 애틋한 소리를 우리는

우리네의 도자 공예에서 듣고 있다. 

 

한국 도자기를 모르면 도자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이미 진실로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아는 세계 예술인들의 자백이다.

한국은 과거의 나라가 아니다. 

면면히 전통을 이어 온, 그리고 아직도 젊은 나라다. 

미술은 망하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과거의 미술이 아니라 아직도 씩씩한 맥박이뛰고 있는 미술이다.                        

 

경복궁의 옛 담장 한국의 후원이란 모두가 이렇게 자연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테두리 안을

의미할 때가 많다.궁전의 후원이나 초당의 후원들이 대개는 그러하고 또 동산밑에 자리밥은

초가의 뒤뜰이 모두 그러하다.할하자면 이렇게 자연과 후원을 천연스럽게 경계짓는 것이 담장이며

이 당장의 표정에는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소박한 토담의 경우도, 우람한 사고석담의

경우도 모두 지세 생긴 대로 충단을 지으면서 언덕을 기어 넘게 마련이어서 산이나 언덕을 뭉개기 좋아하는                                

요새 사람들의 생리와는 크게 마음이 다르다.                                                                             

 

하늘빛 청자. 마치 고려 사람들의 오랜 시름과 염원, 그리고 가냘픈 애환을 한꺼번에 걸러낸 것만 같은 푸른빛,

으스댈 줄도 빈정댈 줄도 모른는, 그리고 때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깊은 생각에 호젓이 잠겨 있는 이 프른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송나라 학자 태평노인도 그의 저서 '수중금 '에서 천하 제일 몇 가지 예를 들고

그 속에 '고려비색'한 몫을 희떱게 꼽고 있었다.

나는 이 담담하고 푸른빛이 겸허와 지조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색과 고요의 아름다움이라면

아마 이것을이름붙여서 자제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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