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그럼에도 나는...

잎새's 2016. 4. 2. 10:52

 

 

 

 

무서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 자학이 없는 삶의 끝은

저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부끄러움을 나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그런 삶,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것은 지식인이다.

             -김수영의 <퓨리턴의 초상 중에서>

 

 

역치, 자극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강도,

언젠가 '통각 과민증'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특수한 종류의 병적 상태에서 통각 역치가 현저히 낮아져,

작은 아픔도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증상,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 '통각 불감증'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아픔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증상 말이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때는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아프지만,

계속 치다 보면 굳은살이 박여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마음의 고통도 거듭되면 어느새 굳은살이 박인 듯 마음 또한 딱딱해져

통각 불감증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다만 느릴 뿐이다 중에서 / 강세영

 

 

 

 

동네 도서관의 공사로 이웃 도서관인, 일곡도서관에서 대여한

<나는 다만, 느릴 뿐이다>라는 책을 며칠째 놓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편하게 읽혀서...

책의 중반즈음 접어들어선 내 마음을 들킨 것 마냥 공감이 되어버려...

라디오 작가로 10년을 일하던 직장에 갑자기 글을 쓰겠다며

사표를 던진 그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내 마음속 한편에 이루고 싶은..

그러나 현실의 벽에 또는 적당히 삶에 타협하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 그래도 무언가 있겠지...

그런데 그녀도 똑 같이 두렵고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이 듦이란, 점점 현실과의 괴리감은 줄어들면서

오래전 품었던 꿈과는 멀어져 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체나이가 아닌 생각의 쪼그라듦일지도 모르겠다는...

 

봄햇살이 눈부신 4월의 첫 번째 맞는 주말,

한가로이 책을 뒤적일 입장은 아닌데...

밀린 집안일과 그 보다 더 밀린 사이버강의들...

그런데도 나는 김수영의 글에...

강세영의 푸념같은 사유로 인해...

한 걸음 내딛는 그녀의 행보에..

황금 같은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현실에 놓인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가슴 한켠에서는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무언가라도 끄적여야 할거 같다.

엊그제 봄꽃이 이쁘게 피었으니 꽃 보러 오라는

지인의 초대에 다녀온 그 집 앞마당의 수선화...

바람이 살랑거린 봄날 저녁을

희고도 노오란등불이 켜진 것 마냥

그 집 앞마당을 밝혀 주고 있었고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애완견 산이의 무심한 표정.

편한 아파트의 삶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을 일러주었던 한 주가 그렇게 지나고 있다.